부산 기장 아홉산숲
한 집안이 400년 지켜온 숲의 시간

부산의 겨울을 떠올리면 먼저 바다가 생각난다. 바람이 세고 공기가 맑은 대신, 오래 걷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계절이다.
그런데 기장군 철마면 쪽으로 차를 몰고 올라가다 보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도로 양옆으로 산이 가까워지고, 공기가 한 번 더 가라앉는다. 이곳에 들어서면 겨울이라는 사실이 잠시 흐릿해진다. 잎이 떨어진 나무보다 여전히 초록을 유지하는 숲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홉산숲은 관광지답게 눈길을 끄는 간판이나 화려한 입구가 없다. 숲 입구에 서면 “여기가 맞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대신 문을 지나 몇 걸음만 옮기면 소리가 달라진다. 차 소리는 멀어지고,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소리가 또렷해진다. 겨울 숲에서 기대하는 쓸쓸함보다는, 묵직하고 안정된 분위기가 먼저 느껴진다.
아홉산숲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부산관광공사/아홉산숲
부산 기장 철마면, 400년을 이어온 사유림
아홉산숲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아홉산 자락에 자리한 숲이다. 이곳은 국가나 지자체가 조성한 공원이 아니라, 한 집안이 약 400년 가까이 가꾸고 지켜온 사유림이다. 개발 압력이 컸던 시기에도 숲을 베어내거나 시설을 들이지 않았고, 그 결과 지금의 모습이 남았다. 전체 면적은 약 52만㎡로, 도심과 가까운 곳에서는 보기 드문 규모다.
숲의 구성도 단순하지 않다. 대나무숲과 편백나무, 삼나무, 은행나무처럼 사람이 심어 가꾼 숲이 있고, 수령 100년에서 300년에 이르는 금강송을 중심으로 한 자연림도 함께 있다. 인공림과 자연림이 한 공간에 섞여 있지만, 억지로 나뉜 느낌은 없다. 오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겨울에도 이 숲이 비어 보이지 않는 이유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부산울산지사 위브부산/아홉산숲
아홉산숲이 겨울에 특히 인상적인 이유는 나무 종류에 있다. 잎을 떨구는 활엽수보다 사계절 내내 잎을 유지하는 대나무와 침엽수가 숲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한겨울에도 시야가 텅 비지 않는다. 초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니, 풍경 전체가 회색으로 가라앉지 않는다.
숲 바닥을 보면 이 특징이 더 분명해진다. 마른 낙엽이 두껍게 쌓인 대신, 이끼와 흙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습기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지형과 나무 밀도 덕분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삭한 소리보다 묵직한 감촉이 전해진다. 겨울 숲 특유의 차가움보다는, 차분하게 눌러주는 느낌에 가깝다.
사람보다 먼저 이곳을 차지한 생명들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부산관광공사/아홉산숲
이 숲에는 사람보다 먼저 살던 존재들이 기억처럼 남아 있다. 산토끼와 고라니, 꿩과 멧비둘기 같은 동물들이 숲과 대밭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족제비와 오소리도 이 일대에서 관찰되고, 반딧불이가 확인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런 생태가 유지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숲이 오랫동안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전쟁과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도 이 숲은 쉽게 개방되지 않았다. 길을 내고, 시설을 들이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숲은 숲다운 상태로 남았고, 생명들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많이 열지 않는 대신, 오래 남기는 방식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부산관광공사/아홉산숲
아홉산숲은 지금도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주류나 음식물 반입을 할 수 없고, 등산 스틱과 자전거, 유모차도 입장이 불가하다. 많은 사람을 받는 대신, 숲의 상태를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주말에도 북적이는 느낌은 적다. 걷다 보면 앞뒤로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많지 않다.
놀이공원처럼 눈에 띄는 시설은 없다. 대신 숲 해설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아이들을 위한 숲 체험 활동도 마련돼 있다. 모든 활동은 숲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뤄진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지 않고, 나무를 만지거나 꺾지 않는 방식이다. 이곳에서의 관람은 소비에 가깝기보다, 관찰에 가깝다.
천천히 걷게 되는 숲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부산관광공사/아홉산숲
아홉산숲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진다. 사진을 찍느라 멈추기보다는, 그냥 걷다가 멈추게 된다. 소리가 크지 않고, 풍경이 과하지 않아서다. 숲은 앞에 나서지 않고, 사람을 안쪽으로 들인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봤다”는 기억보다 “잠시 머물렀다”는 인상이 더 강하게 남는다.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사는 숲이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잠깐 다녀가지만, 숲은 그대로 남아 다음 계절을 맞는다. 겨울에 이 숲이 특히 잘 어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용한 시기에 들어가야, 이곳의 성격이 더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겨울에 갈 만한 곳을 찾고 있다면, 바다 말고 다른 선택지를 떠올리고 있다면, 아홉산숲은 자연스럽게 후보에 오른다. 화려하지 않고, 빠르지 않지만, 계절을 조금 비켜 선 초록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